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쩐 왕조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3세기 중엽부터 [[몽골 제국]]의 [[원나라의 베트남 원정|침공을 받았다.]] 당시 몽골족이 중국을 통일해 [[원나라]]가 세워지고 [[한족]]의 [[남송]]과 [[여진족]]의 [[금나라]], 그리고 탕구트족의 [[서하]]가 모두 멸망한 직후였으며 원나라는 남쪽 방면의 안정과 진정한 중국 통일을 위해[* 몽골도 베트남 북부를 중국 땅으로 인식했다. 그래서 쳐들어간 것. 왜냐하면 자신들이 송나라를 계승했다고 생각했기에, 송나라의 잃어버린 땅인 베트남 북부를 되찾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.] [[한족]] 위주의 수군을 대규모로 동원해 베트남 침공을 시작했다. 물론 결과는 알다시피 베트남이 중국을 무찌른 사례 1에 추가되었을 뿐이다. * 1차는 1257년의 침공으로 [[대리국]]을 점령한 몽골족이 [[정명가도|'''정송가도'''를 요구하며]][* 물론 여기로 가는게 더 멀다. 베트남 북부에서 [[광시좡족자치구]] 및 [[윈난 성]], [[구이저우 성]] 등 중국 남부로 갈려면 안남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이게 엄청난 고산이다.] 군대 3만 명으로[* [[한족]] 수군이 대부분이었고, 일부 [[거란족]]과 [[여진족]] 혼성부대로 구성된 부대였다.] 침공했다. 원군은 수도인 탕롱(Thăng Long, 昇龍, 지금의 하노이)를 점령했으나, 전염병으로 철수하였고 이를 틈타 쩐군이 공격하여 원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. * 2차 침입은 1284년으로 대원을 세운 세조 [[쿠빌라이 칸]]은 참파, 운남, 광동의 세 방향으로부터 공격을 개시했다. 이 가운데 참파는 당시 이미 원군이 침입한 상태였다. 참파의 수도는 점령당했지만 하리짓 왕자를 중심으로 한 [[게릴라]]전이 진행 중이었다. 원군은 수도를 함락시켜 쩐 왕조를 멸망 직전으로 밀어넣었다. 그러나 [[쩐흥다오]](陳興道, Trần Hưng Đạo)의 계속되는 항전과 전염병, 게릴라전 등으로 결국 실패했고, 쩐군은 [[원나라]]군 포로만 5만 명을 사로잡을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. 이 사이 1285년, 쩐 왕조는 국호를 '''안남'''에서 '''대월'''로 돌려놓아 자주성을 강조하였다. [[파일:external/upload.wikimedia.org/200px-Tranhungdaosta.jpg]] '''[[쩐흥다오]](1228년 ~ 1300년)''', 쩐 태종의 형의 아들로, 쩐 태종의 조카이자 제2대 쩐 성종의 사촌형이었다. * 하지만 [[근성]]의 원 세조 쿠빌라이는 1287년, 3차 침공을 감행한다. 이를 위해서 진행 중이던 일본 원정까지 중단시켰다. 이때도 수도를 점령하고 대월을 장악하려고 했지만, [[쩐흥다오]]가 1288년 병량을 수송하던 원나라의 수군을 백등강(白藤江, 현재의 송코이강 혹은 홍하)에서 격파함으로써 원나라의 침공을 물리칠 수 있었다. '''이로써 독립 직후 중국 세력을 모두 물리쳤다!''' * 당시 황제였던 [[진인종|인종]](仁宗)은 더 이상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 조공을 바치고 당시 잡아두고 있던 원군 포로를 전원 송환하는 등 최대한의 예우를 갖췄지만, 오로지 직접 통치만을 외쳤던 세조 쿠빌라이의 근성은 끝이 없어서 또 4차 침공을 준비하였다.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근성의 쿠빌라이가 사망하면서 정벌은 중단되었다. 쩐 왕조는 이후 참파의 포 비나수오르의 공격으로 수도가 연이어 털리고, 10대 황제 [[진예종(10대)|예종]](睿宗, Trần Duệ Tông)이 전사하기까지 하는 사태를 겪었다. 당시 9대 황제 [[진예종(9대)|예종]](藝宗, Trần Nghệ Tông)의 외척이었던 권신 [[호꾸이리]](Hồ Quý Ly, 胡季犛)가 권력을 잡고 득세함으로써 1400년, 10대 175년만에 멸망했다. 학살로 즉위한 쩐 왕조는 다른 성씨의 찬탈을 막기 위하여 '''태상황 제도나 근친혼 등을 적극 활용했다'''. 9대 황제 예종(藝宗)도 태상황으로 동생 예종(睿宗)의 사망과 조카 [[진현|폐제]]의 폐위를 지켜보고 붕어했다.[* 다만 이는 약간 과장한 것으로 진현은 예종이 폐위한 것이다. 게다가 9대 예종의 재위기간은 고작 2년으로 태상황 재위기간의 20년보다 1/10 수준이다.] 하지만 [[과거 제도]]나 외척 등으로 멸망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